봄기운 완연한 거제 앞바다, 이곳에서는 지금 한창 제철 맞은 숭어 잡이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숭어 잡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릅니다. 배를 타고 고기를 쫓는 대신, 수백 년 이어져 온 전통 방식, ' 육소장망' 어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죠. 마치 자연과 하나 되어 때를 기다림으로써 얻는 귀한 선물과도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바로 26년 경력의 어로장, 안승철 씨입니다. 산속 망루에 자리 잡고 매의 눈으로 바다를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숙련된 어부의 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거제의 육소장망 어법은 숭어의 습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활용하는 지혜로운 방식입니다. 숭어는 특정 경로, 즉 '길목'을 따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인데, 바로 이 길목에 거대한 그물을 미리 설치해두고 숭어 떼가 들어오기를 기다림는 것이죠. 옛날에는 여섯 척의 배(그래서 '육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가 동원되어 그물을 끌어올렸지만, 지금은 바지선과 유압식 엔진의 도움을 받아 좀 더 효율적으로 조업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망루에서 어로장의 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함부로 그물을 올릴 수 없다는 것, 오직 기다림만이 허락된 시간입니다.
어로장 안승철 씨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해마다 줄어드는 숭어 어획량 때문에 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수온 변화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숭어 자원이 예전 같지 않아, 이제 거제 숭어는 더욱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숭어 떼를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 어로장의 눈은 단순히 바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숭어의 미세한 움직임, 물빛의 변화, 심지어 갈매기의 움직임까지 포착해야 합니다. 은빛 배를 번쩍이며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죠. 이 육소장망 어법에서는 어로장의 판단 하나하나가 그날의 조과를 결정짓습니다.
육소장망 어법에는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한 번에 많이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적은 양의 숭어를 잡고 그물을 다시 내리면, 잡혔던 숭어들이 남긴 '비린내(비름물)' 때문에 다른 숭어 떼가 경계심을 품고 그물 근처로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로장은 작은 숭어 떼가 보여도 섣불리 그물을 올리지 않습니다. 더 큰 무리를 기다림으로써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양을 확보하는 것이 육소장망 조업의 핵심 전략인 셈이죠. 이는 기다림의 미학이자, 거제 어부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입니다.
오전 11시, 드디어 어로장의 신호와 함께 첫 그물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숭어의 양은 많지 않습니다. 망루에서 지켜보던 어로장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속도전입니다. 그물이 올라옴과 동시에 배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여 그물 안의 숭어를 '임통'이라는 작은 그물 주머니로 옮겨 담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힘 좋은 숭어들이 그물을 뛰어넘어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죠. 비록 적은 양이지만, 거제 앞바다가 선물한 귀한 봄 숭어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육소장망 어업의 일부입니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안승철 어로장이 이곳 거제 망루에서 숭어를 기다린 지도 어언 30년. 선배들의 시간까지 더하면 육소장망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어느덧 점심시간. 오전에 잡은 싱싱한 숭어 한 마리로 끓여낸 김치찌개는 어부들의 고된 노동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최고의 메뉴입니다. 하지만 식사를 하면서도 어로장과 선원들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언제 다시 숭어 떼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물때를 예측할 수 있는 다른 어업과 달리, 숭어잡이는 오직 기다림과 관찰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후,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어로장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드디어 레버가 당겨지고, 산속 곳곳에 설치된 기계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배구장 네 배 크기의 거대한 그물이 서서히 올라오자, 은빛 숭어들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번에는 제법 많은 양의 숭어가 잡혔습니다. 약 500kg 정도. 비록 예년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양이지만, 며칠간 숭어 구경조차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큰 수확입니다. 이 육소장망 방식으로 잡은 거제 숭어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 최상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힘든 기다림 끝에 얻은 값진 결과물이지만, 어로장과 선원들은 내심 더 많은 숭어 떼를 기대하며 다음 기다림을 준비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제 육소장망 어부들의 숙명과도 같은 일상입니다.
영상주소 : youtube.com/watch?v=xbxl2lGhWhU
사진출처 :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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